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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귀: 소리를 듣는 방식의 과학

#*$(*@$(@ 2025. 5. 19.

 

고래의 귀: 소리 없는 세상에서 소리를 듣는 경이로운 능력

넓고 깊은 바닷속,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고래들은 어떻게 서로 소통하고, 먹이를 찾고, 광활한 바다를 탐험하며 살아갈까요? 육상 동물처럼 겉으로 보이는 귀가 없는 이 거대한 해양 포유류들은 우리 인간과는 전혀 다른, 매우 정교하고 신비로운 방식으로 소리를 듣습니다. 물은 공기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멀리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입니다. 그렇기에 바닷속 생명체에게 소리는 시각보다 훨씬 중요한 감각 정보원이 되죠. 고래에게 청각은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이며, 그들의 복잡한 사회생활, 번식, 항해, 그리고 먹이 사냥 등 모든 활동의 핵심을 이룹니다. 수천만 년 동안 물속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고래의 청각 시스템은 그 자체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줍니다. 이제부터 겉모습과는 달리 소리에 극도로 예민한 고래들이 어떻게 이 광대한 바다를 귀로 느끼며 살아가는지, 그 특별한 청각 능력의 비밀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바닷속 세상, 소리의 역할과 중요성

우리에게 익숙한 육상 환경과 달리, 바닷속은 빛이 깊이 침투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다릅니다. 물속에서는 소리가 공기 중에서보다 약 4배 더 빠르게 이동하며, 감쇠율도 훨씬 낮아 수백,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전달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바다는 소리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래에게 소리는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을 넘어섭니다. * 소통: 혹등고래의 아름다운 노래처럼, 저주파 소리는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동족과의 소통에 사용됩니다. 이빨고래의 클릭 소리나 휘파람 소리 역시 사회 집단 내에서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필수적입니다. * 항해와 탐색: 고래는 소리를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해저 지형, 수심, 주변 환경을 인지합니다. * 먹이 사냥: 특히 이빨고래는 반향정위라는 기술을 사용해 소리를 발생시키고 그 반향을 분석하여 먹이의 위치, 크기, 심지어 내부 구조까지 파악합니다. * 번식: 특정 소리는 짝을 유인하고 구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소리는 고래의 삶 전반에 걸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효과적으로 소리를 듣고 해석하는 능력은 고래의 생존과 번영을 좌우합니다. 인간의 귀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포착하고 처리하는 고래의 청각 시스템은 그들의 수중 생활에 완벽하게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고주파 전문가, 이빨고래의 청각 비밀

돌고래, 향유고래, 범고래 등으로 대표되는 이빨고래(Odontocetes)는 주로 고주파 소리를 듣고 사용하는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놀라운 생체 소나 시스템인 반향정위(Echolocation)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어둠 속에서도 주변 환경을 마치 '보는' 것처럼 탐색하고 먹이를 찾습니다.

이빨고래는 인간처럼 귓바퀴(pinna)와 같은 외부 귀 구조가 전혀 없습니다. 대신, 그들은 소리를 포착하기 위해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사용합니다. 핵심은 바로 아래턱뼈(mandible)에 위치한 특별한 지방 패드입니다. 이 지방 패드는 마치 거대한 지방으로 된 토끼 귀처럼 아래턱을 따라 길게 뻗어 있으며,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효율적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물속에서 발생한 소리는 이빨고래의 아래턱뼈와 지방 패드를 통해 직접 전달됩니다.

지방 패드를 통해 포착된 소리 진동은 특화된 경로를 따라 내이(inner ear)로 이동합니다. 이빨고래의 내이는 두개골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며, 소리 진동이 뼈를 통해 직접 전달되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지방 패드로부터 들어오는 소리 신호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진화했습니다. 소리는 내이의 달팽이관(cochlea)에 도달하여 신경 신호로 변환되고, 이 신호가 뇌로 전달되어 소리로 인지됩니다.

이빨고래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 범위(약 20Hz~20kHz)를 훨씬 뛰어넘는 고주파, 즉 초음파 영역의 소리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일부 종은 150kHz 이상의 매우 높은 주파수까지 들을 수 있으며, 이러한 높은 주파수 청각 능력은 반향정위를 통해 작은 먹이나 복잡한 구조물을 정밀하게 탐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빨고래의 아래턱 지방 패드는 이러한 고주파 소리를 포착하고 내이로 전달하는 데 최적화된 독특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주파를 노래하는 거인, 수염고래의 청각 연구

혹등고래, 대왕고래, 귀신고래 등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수염고래(Mysticetes)는 먹이를 걸러 먹기 위한 수염(baleen)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저주파 소리를 사용합니다. '고래 노래(whale songs)'로 알려진 이들의 복잡하고 긴 소리는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장거리 소통에 사용됩니다.

수염고래의 청각 시스템은 이빨고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연구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들의 거대한 크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구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수염고래의 귀는 인간의 머리만큼 크고 볼링공처럼 단단한 뼈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귀뼈는 두개골 측면에 돌출된 불독 머리 크기의 소라 모양 뼈 안에 위치합니다. 수염고래 또한 이빨고래처럼 귀 근처에 지방 패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염고래가 저주파 소리를 듣는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제시되고 있으며,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한 가지 주요 가설은 수염고래가 소리를 듣기 위해 특화된 두개골 구조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고래의 몸길이보다 긴 파장을 가진 저주파 소리의 경우, 두개골 전체가 진동하면서 소리를 포착하고 증폭시켜 고막-귓바퀴 복합체(tympano-periotic complex)로 전달된다는 이론입니다. 이 방식은 단순히 조직을 통해 소리가 전달되는 것보다 최대 4배 더 민감할 수 있다고 제안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이 가설이 수염고래가 소리의 방향을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며 다른 견해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연구 방향은 수염고래가 뼈 전도(bone conduction)를 주된 청각 방법으로 사용한다는 가능성입니다. 물속의 저주파 진동이 직접 뼈를 통해 내이로 전달된다는 것이죠. 최근 핀고래(수염고래의 일종)에 대한 예비 연구 결과는 이빨고래와 달리 아래턱뼈가 청각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며, 수염고래의 청각 메커니즘이 이빨고래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수염고래의 정확한 청각 방식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 거대한 동물들이 어떻게 저주파의 세계를 탐색하는지에 대한 비밀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인간의 소음, 고래에게 미치는 영향

고래의 생존에 청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면, 인간이 발생시키는 수중 소음 공해가 이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선박 소음, 군사 훈련 시 사용되는 음파 탐지기(sonar), 석유 및 가스 탐사를 위한 에어건 발파음 등은 고래의 섬세하고 민감한 청각 시스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지속적인 선박 소음은 특히 저주파 소음을 사용하는 수염고래의 통신 신호를 가로막아 동족 간의 의사소통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마치 시끄러운 식당에서 대화하기 어려운 것처럼, 바닷속 소음 증가는 고래들이 서로 부르고 답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음파 탐지기의 강력한 소리는 고래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하거나 먹이 활동을 방해하며, 심한 경우 해안으로 좌초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 활동으로 인한 소음이 고래의 번식, 먹이 활동, 이동 패턴, 그리고 전반적인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십만 년 동안 비교적 조용했던 바닷속 세상이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점차 시끄러워지고 있으며, 소리에 크게 의존하는 고래와 다른 해양 생물들은 이러한 변화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래의 경이로운 청각 능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중 소음 공해를 줄이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과 기술 개발이 시급합니다.

결론하며: 소리로 연결된 바다와 고래

고래는 겉으로 보이는 귀가 없지만, 물속 세상의 소리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독특하고 정교한 청각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빨고래는 아래턱 지방 패드를 통해 고주파 소리를 포착하고 반향정위로 주변을 탐색하며, 수염고래는 두개골이나 뼈 전도 등을 통해 저주파 소리를 감지하고 장거리 소통을 합니다. 이들의 청각 능력은 각기 다른 생태와 먹이 활동에 맞춰 진화한 결과입니다.

고래의 청각 능력은 단순한 소리 감지를 넘어, 복잡한 사회생활과 생존 전략의 근간을 이룹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수중 소음은 이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고래의 신비로운 청각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함께, 우리가 바닷속에 남기는 소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고래의 귀를 통해 바라본 바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리로 연결되고 소리에 민감한 세상입니다. 이 경이로운 생명체들이 앞으로도 푸른 바다에서 평화롭게 노래하고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의 소리 환경을 지키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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